양정찬 부산경남 렛츠런 노조위원장

그는 17살에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뚝섬 경마장에 마필관리사로 입사하였습니다.
그의 신체적 조건을 고려해서 경마기수를 꿈꾸며 노예같은 열악한 마굿간생활을 견뎌내며 하루하루를 버텨내었습니다.
마굿간에는 볏짚을 바닥에 깔아서 말들의 소변과 변을 처리하였는데 이 냄새가 엄청 곤욕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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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일하시는 형들은 관리사 처우에 항상 울분을 터트리면서 술로 아픔을 많이 달래기도하는 한편 수많은 형들이 더러움에 적응하지 못하여 경마장을 떠나갔습니다.
그당시는 80년대 이었기 때문에 경마매출도 엄청난 수익을 만들어내고 수 많은 경마 고객분들이 경마로 스트레스를 달래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열악한 이러한 환경을 마사회가 개선해주어야 하는데 마사회는 외면하였습니다.


시간이 잠시흘러서 저는 기수면허를 취득하여 꿈에 그리던 시합에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시합은 쉽지 않았지만 서서히 기수의길을 적응하려 했습니다.
얼마되지않아 8기 출신 형님이 기수 숙소에서 이상한 약품을 마시고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사건 이후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
마사회는 무엇이 두려운지 언론에만 전전긍긍 사건을 축소하였고 사후에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지도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2011년 저는 무슨 인연으로 부산경마장에서 동료관리사인
고 박용석 관리사의 자살을 접하게되었습니다.
이때 부산마사회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고인이 원하는 임금투명성을 밝혀서 다시는 이러한 불상사가 안일어 나도록 하겠다고..
우리는 반신반의 하면서 그사건을 서서히 접어가며 새로운 임금체계를 마사회가
만들어 줄것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마사회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모든 관리사들이 울분을 토하며 외쳐댔지만 누가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다음해 2012년 4월경 누군가 임금체계를 바꿔달라고, 관리사 인권유린을
막아달라고 1인 시위를 하였습니다.
그사람은 양정찬 이었습니다.
그의 행동은 마사회와 조교사들에게 경종을 울렸지만 마사회의 압박으로 부산
경마장을 떠나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다시 돌아왔습니다. 수많은 부산 관리사들이 환영해 주었습니다.
새로운 노동조합의 리더가 될 적임자가 돌아왔다고…
그는 수 많은 관리사들의 지지를 받아 노조를 진두지휘하였습니다.
새벽 3시 30분부터 일을 시작했던 마방들을 과감하게 05시부터 하게하였고
당직을 맡게되면 11시까지 잡일을 하며 마굿간에서 자야했던 제도를 저녁8시에
퇴근하게끔 제도를 개선하는등 수 많은 일들을 착착 정리해 나갔다.


하지만 마사회는 그를 독특한 방법으로 관리사 생활을 못하게하여 노조리더에
흠이 있다하면서 그를 제거하려고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법원에 가처분 신청과 형사고발.
그는 두려웠지만 250명의 행복을 지키기위해 저항하였습니다.
그러던 2017년 5월 어느날…
아주 유망한 관리사가 목을매어 자살을 하였습니다.


진즉에 마사회가 제도를 바꾸어 주었다면 또 이런 슬픔일이 발생하지 않았을텐데.
지금은 유족의 위임을 받아서 민주노총 부산본부와 마사회가 대책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사회는 반성과 재발방지 노력을 하지않고 시간만 흘러보내고 있습니다.
그는 고 박경근 관리사를 생각하며 유족과 많은 눈물을 흘렸지만 이글을
쓰고있는 이순간에도 그는 가족에게는 눈물을 한번도 보이지 않았던 그의 얼굴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출처 : 양정찬 지부장